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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 포스터

 

2024년 개봉한 영화 <파묘>는 흔한 오컬트 영화로 단정 짓기에는 많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귀신이 나온다거나 굿판을 벌인다는 단순한 전개에 머무르지 않고, 조상과 무덤, 풍수와 무속, 나아가 인간의 업(業)과 죄의식까지 다뤘기 때문인데요. 무덤을 파헤친다는 것은 단지 땅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죄책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죽은 자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일은 살아 있는 자의 운명을 거스르는 일인가?’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죽은 자의 무덤을 건드린다는 것의 무게

이야기의 시작은 미국 LA에 살고 있는 어느 부잣집 가문이 겪는 이상한 일들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신경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이 이어지자, 이들은 무당인 이화림(김고은)과 법사 윤봉길(이도현)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조상의 묘를 파헤치는 ‘파묘’라는 선택지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 설정 자체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으며 무덤이라는 공간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금기의 영역이다. 조상을 욕되게 한다는 것은 어른들 세대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 금기의 행위를 통해 등장인물들이 숨겨왔던 죄와 부채를 드러내고 있으니 놀라웠습니다.

이 영화는 공포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심리극에 가깝습니다. 무덤을 중심으로 조상이 벌인 저주가 이어지는 장면들도 있지만, 진짜로 무서운 것은 조상의 죄를 대물림 받는 후손들의 운명인거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무속신앙이나 굿의 장면보다도, 인물들이 조상에 대한 존중과 공포, 그리고 과거를 외면하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더 깊게 다가왔습니다.

 

무속과 풍수가 만나는 한국형 오컬트의 새로운 시도

《파묘》는 장르적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오컬트’라는 장르는 대개 서양적 배경, 이를테면 악마나 이교적 신앙 체계에 기반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철저히 한국적인 세계관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어요. 무당, 법사, 풍수사, 장의사라는 독특한 직업군이 한 팀을 이루어 파묘 작업에 나서는 설정은 보기 드문 구조이며, 이들의 역할이 각기 구체적으로 분담되어 있다는 점에서 현실감까지 느껴집니다.

특히 풍수사 김상덕(최민식)의 존재는 이야기의 중심축이고 땅의 기운을 읽고, 좋은 묘 자리를 판별하는 인물이 서스펜스의 긴장을 끌고 가는데, 여기서 풍수라는 전통 지식이 현대 영화에서 이렇게 강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입니다. ‘풍수’라는 단어를 들으면 뭔가 미신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영화 속에서는 이 전통 지식이 하나의 논리처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당, 법사, 풍수사, 장의사가 각자의 역할을 하며 하나의 ‘의식’을 완성하는 과정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장면 중 하나인게 분명합니다.

 

《파묘》가 말하는 공포는 결국 사람의 죄에서 온다

이 영화는 단순한 귀신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무덤을 파헤치는 장면이나 혼령이 등장하는 장면보다, 인물들이 죄를 숨기고 진실을 감추며 만들어낸 흐릿한 죄책감이 훨씬 더 무겁게 다가왔는데요. 조상 대에 지은 죄를 후손이 떠안아야 한다는 설정이 단순한 전개일 수 있으나, 영화는 그 구조 안에서 '죄의식의 대물림'이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 봅니다.

보면서 한 가지 계속 떠올랐던 건, 우리가 생각하는 '저주'란 정말 외부에서 오는 초자연적인 현상일까 하는 점이었. 어쩌면 그것은 죄책감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감추기 위해 무덤을 조작하고, 진실을 묻어버린 그 순간부터 이미 저주는 시작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귀신이 등장하기 전부터 등장인물들은 이미 충분히 저주받은 상태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공포 장르를 가장한 인간 심리극에 가깝습니다.

 

천만 관객이 선택한 이유는 단지 무서워서가 아니다

흥행 성적만 보면 《파묘》는 천만 관객을 돌파한 대중적인 영화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이 단지 무서워서, 혹은 재미있어서 관객이 몰렸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한국 사회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조상'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상을 존중하면서도 두려워 하고. 무덤은 신성한 공간이면서도 어쩌면 죄의 은폐처이기도 하니까요.

《파묘》는 이처럼 금기와 신념, 가족과 후손이라는 다층적인 감정 구조를 건드리며 관객의 내면을 자극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단순한 장르 영화 이상의 무언가로 다가왔고, 단지 공포보다는 ‘한국인의 마음속에 있는 오래된 감정’을 끄집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영화는 자주 나오지 않을 것이며, 전통과 현대, 초자연과 심리, 공포와 죄의식이 이렇게 균형 있게 얽혀 있는 작품은 흔치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영화를 본 뒤에도 무덤과 조상에 대한 생각을 며칠 동안이나 붙잡고 있는거 같습니다.

 

영화 파묘 Q&A 궁금한 질문 모음

Q. 무덤을 파헤친다는 설정이 현실적으로 와닿았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우리 사회에서 무덤은 단지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조상에 대한 예의와 금기까지 모두 담겨 있는 상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파묘 장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가족의 역사와 죄의식까지 들춰내는 계기가 되어 더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스릴보다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감정’을 건드리는 점에서 훨씬 현실적이었어요.

 

Q. ‘공포’보다는 ‘심리극’에 가깝다고 느꼈다는데, 어떤 점에서 그랬나요?
A. 귀신이 나오거나 굿을 하는 장면보다 인물들이 ‘왜 이 무덤을 건드리려 하는가’에 대한 심리적 갈등이 훨씬 더 인상 깊었어요. 이 영화는 외적인 공포보다는, 조상의 죄를 마주해야 하는 후손의 두려움과 책임을 다루고 있어서, 스릴러보다 심리극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Q. 전통문화가 영화 속에서 어떻게 작용했다고 보셨나요?
A. 풍수지리, 무속, 굿, 장례 문화 같은 전통 요소들이 단지 배경 설정이 아니라, 인물들의 행동과 선택을 결정짓는 주요한 장치로 쓰였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단순히 미신으로 소비되지 않고, 논리와 상징으로 기능하는 방식이 오컬트 장르에 신선함을 더해주었다고 느꼈습니다.